여자는 냉장고 문을 열때면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무얼 해먹을지 전혀 모르겠을 그때
여자는 냉장고 문을 닫고 최대한 멀리 떨어진다.
이유식을 먹는 아기, 끼니를 대충 챙겼던 아기엄마였다.
남자는 느닷없이 집에 오곤 했다.
뭐라도 차려볼까 하고 여자가 냉장고를 열어보고 머뭇거리다 조용히 닫는다.
남자도 냉장고를 열어 양념이나 반찬통을 가지런히 둔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본다.
당신이 돈 못 벌어온다고 내가 아이 팽겨쳐두고 알바라도 다니면 좋겠어?
그녀는 그렇게 남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냉장고를 뒤질 때마다
여자는 야심차게 식재료를 사면 얼마지 않아 대부분 버려야 했다.
예고없이 찾아온 남자, 여자는 미안한 손길로 궁색한 밥상을 차리다 만다.
미리 말해 주면 장을 보겠다고 하자 남자는 아무런 대답없이 강아지를 들어 안았다.
한 때 여자에게 지었던 미소로 말이다.
신혼 때 썼던 냉장고가 사망했다.
여자는 마침 누군가와 통화하다 냉장고 사망 소식을 전한다. 건너편 나이 든 여자는 냉장고를 사주겠다는 말을 한다. 여자는 거절했고 남자는 짜증을 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바라보았다.
4도어 냉장고가 들어왔다.
넓고 깊어 여자는 안쪽까지 식재료를 넣으면 의자를 놓고 꺼내야 했다.
남자는 매 끼니마다 구워 먹으라며 손바닥 만한 말린 생선을 냉동실에 가득 넣어두었다.
여자는 먹지 않았다. 어느 날 남자는 몇 년 동안 냉동실에 묵혀 두었던 말린 생선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옆모습을 보았다.
남자는 종종 집근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주곤 현관문 밖으로 다시 나갔다.
강아지는 현관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여자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 아이의 옷을 사는게 기뻤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남자가 아침에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하라고 했다.
여자는 경단을 깨고 회사생활 적응하느라 이미 탈진 상태였다.
1년에 1달 동안 함께 있는 특별한 달,
올해 유난히 같은 공간에 잠시 있는 것도 모두가 힘들어 했다.
여자는 가끔 냉장고 문을 열어 무얼해야할지 막막할 때마다
남자 손에 들려 있던 고기가 담긴 까만봉투를 떠올렸다.
여자는 아이와 살던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남자는 집을 구하지 않았다. 여자는 원룸을 구해 아이와 이사를 가기로 한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집기를 팔기 시작했다. 4도어 냉장고도 이사일보다 이른 때에 팔려가 실온에 있던 음식들을 대부분 버려야 했다.
여자는 남자가 두고 가라던 대형 티비와 아이와 여자의 PC를 거실 중앙에 가지런히 두고 1톤 트럭에 짐을 실었다.
원룸에는 마침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 책상을 둘 자리가 없어 바로 팔아야 했다.
아이는 고3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몇개월 뒤 아파트로 이사가며 중고로 작은 냉장고를 구입했다.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