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함께 사는 남자

CGV 영화입장권, 왕과 함께 사는 남자

아이와 집 근처 CGV에서 왕과 함께 사는 남자를 예매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후 아이와 보는 두번째 영화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만 해도 손수건을 챙겨야 한다고 했거늘, 주말엔 배차 간격이 넓어지므로 곧 온다는 버스를 놓칠까봐 손수건 생각은 잊은 채 정류장으로 달렸다.

점보팝콘과 제로콜라

스산한 기운은 부천 롯데시네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은 상권에 극장이 들어와 있는 이유가 궁금해져 혼잣말하듯 아이에게 물었다. 극장을 일부러 입점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싶어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키가 참 많이 컸다.
영화관은 모든 것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먹거리는 완비되어 있었다. 라면과 짜파게티를 끓여 먹을 수 있고 닭강정도 있었다.
그래도 영화에는 팝콘이 빠질 수 없다. 고소한 맛과 달콤한 맛 반반을 점보 사이즈로 시켰다. 앞 줄의 키가 큰 관람객의 머리만 아니다면 방해되지 않는 프레임에서 볼 수 있었겠지만, 다행히 화면에 몰입되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영전 영화관

유해진(엄흥도 역) 특유의 가볍고 코믹한 장면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깊어지는 슬픔과 강한 대비를 이루었다.
손수건도 없었으니 양소매를 빼어 어린 아이처럼 울 수 밖에 없었다.


14세의 어린 왕이 자신이 성장할 때까지 방패가 되어주던 주변 인물이 하나 둘 사라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그가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생애 가장 인간답게 살며 생기를 되찾았던 모습은 안도보다 정해진 시간에 끝날 결말이기에 더욱 슬퍼 보였다.
영화는 언제나 관객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해 주인공에게 시련과 평화를 번갈아 주는 법이니까. 자신의 목숨을 적이 아닌 함께 했던 사람에게 부탁했을 때의 마음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도대체 권력이 뭐길래 라는 의문은 현대적인 시선일 뿐이었다. 어린 소년(소녀)이 단단해진 눈빛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백성들의 “사랑”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소년(소녀)들은 그런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을까? 나의 17세는 어떠했을까?

키오스크에 주문을 도와 드리고 있는 20살 청년

역사적 배경이 궁금해져 집에 돌아와 몇 시간을 단종에 대해 검색했다.

내가 이 영화에 투사한 건, 어린 단종을 지켜줄 사람이 없던 배경 때문이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홀로 있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을 텐데, 결국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절망은 강가에서 물장난을 치는 어린 소년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 유배지에서 함께 했던 백성들과의 시간이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노루 이야기가 야화에서 나왔다거나 사건을 각색했다 하더라도, 단종의 일생은 비극이었다.

다이어리 모음전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슬픈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영화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다짐도 필요 없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슬펐을 뿐이며, 지금의 나는 충분히 애도해도 되는 때였다.
어디에도 기댈 수 없었던 17세의 내가 떠올라서일까. 17세에 아버지와 절연했던 아이의 모습 때문일까. 그때의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청년으로 자라고 있다.

밀린 양육비를 받는다고 해서 삶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서 마지막 양육비를 받던 못받던 궁핍한 생활은 예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병원치료까지 하고 있으니 막막함과 불안은 동시에 찾아왔다.
나는 아이가 아니라면 살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오랜 세월 엄마로만 고립된 채 살아왔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제 내 인생을 살라는 말을 듣는 나이다. 나는 이럴 때마다 나이값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어떻게 살아야 아이에게 모든 의미를 걸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집에 돌아와 옷가지를 정리하고 책상머리에서 쌓아둔 지난 다이어리를 펼쳤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책장에서 쓰지 않은 다이어리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2025년 교육박람회때 받았던 오렌지 빛의 다이어리에는 온통 버티기 위한 글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혼 전부터 불안하고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와 업무를 해내려고 하는 의지가 뒤섞여 영화로 슬펐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죽음을 앞둔 단종이 엄흥도를 바라보던 눈빛이 떠올라 또 눈물을 훔쳤다. 극 중 언젠가는 잡아먹힐 노루의 처연한 눈빛과도 닮아 있었다.
다이어리 속 나는 내내 외롭고 슬퍼했다. 무슨 힘으로 이제껏 살아왔던 걸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 버티는 것 만으로도 에너지를 다 썼을테고 그 와중에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으니까.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여전히 계획도 희망도 갖기 어렵다. 낙담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없기 때문일까, 어쩌면 함께할 누군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 이 글이 남자(남편)가 없어 외로운 여자의 푸념이나 이혼녀의 후회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혼 전에도 그랬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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