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알람은 울리지 않는다.

6시 알람을 꺼두었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던 부지런한 손놀림도 멈췄다. 새벽에 깨어나도 다시 잠들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회사 단톡방을 나왔다. 업무 카톡 외에는 조용했던 카톡이 주말처럼 내내 조용해졌다.
한 분 한 분 인사 드렸으니 되었다. 산책을 나가다 이제는 출근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려왔다.

회사에서의 낮시간이 벌써 그립다. 아침 인사하는 동료들, 내 이름을 부르며 업무를 요청하는 동료들, 아침마다 가지고 왔던 카페라떼가 놓여진 책상, 문 열어달라 외치던 고양이….

내게는 울타리였던 회사였다.

끼여들기 작정한 차와 접촉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기세가 약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듯 더는 욕심 내어서는 안되었던 걸까. 그런데 나는 브레이크를 제때 잘 밟은걸까?
밥을 먹으러 가는 사거리에서 “엄마”하며 내 눈과 시선을 마주치려는 두 눈동자가 흔들리는 나를 애써 세운다.

주말마다 했던 가사도우미 알바를 할까. 다시 이력서를 넣어볼까 했는데 갑자기 손목 핀 제거 수술 일정이 떠올랐다.
2월에 수술을 하고 3월에는 아이의 입학과 한부모 가족을 재신청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심리치료가 우선이다. 설 연휴 이후로 일정이 잡혔는데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그때 내가 이렇게 대응했더라면 달라졌을까라는 반추는 자책으로 이어졌고 요즘 흔한 말로 편도체가 과도하게 켜져 위험하지 않아도 위험하다고 느껴 비상사태가 된다. 이렇게 반추와 편도체의 하이체킹은 뇌 속에서 무한루프를 돈다.

퇴사하기 전 날,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회사 짐들을 함께 날랐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조잘거렸다. 기운을 주려는 의도와 다르게 엄마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따듯한 온기다. 그걸로 되었다.


– ITZM

2026-02-13 에 최초로 작성된 글입니다.

아이 밥은 먹여야지


오늘 유튜브에 첫 영상을 올렸습니다. 3분 영상 하나를 만드는데 반나절을 썼습니다. 물론 첫 영상이라 틀을 잡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습니다. 올리고 나니 자막 위치는 아래로 조금 내려와야겠고 하고 싶은 말 한마디로 뾰족한 주제로 3분 정도의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 하고 싶어요. 편집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도록 하려고 합니다.
한부모 가장이 실직하면 생의 위협을 받지만 그래도 일상을 살아내려는 모습과 실직 당시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제 목소리도 만족스럽지 못해서 자막과 영상, BGM으로 구성했습니다.

한부모 가장이 실직한다는 건

불안은 신체에도 영향을 줍니다. 신체화 증상이라고 하죠. 복부 깊은 곳에서 간질거리며 곪아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배꼽 아랫쪽이었고 때로는 자궁이 있는 아랫배도 그랬습니다.
아프면 손이라도 대어볼텐데 통증도 아니라서 아직 정의할만한 단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잠들기는 어렵지 않지만, 자고 막 일어났을 때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우울감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렵게 합니다. 온전히 혼자며 너가 선택한 것이니 모두 혼자 감당해야지라는 가혹한 목소리도 들립니다. 아이에게 뭐라도 먹이려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킵니다.

그래도 하루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심리상담 적합 판정 연락이 와서 미리 알아봐 두었던 심리상담센터에 바로 예약을 했습니다. 12:30으로 애매하긴 하지만, 시간은 변경하면 되고 매주 화요일마다 상담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일에 매달려야 스스로를 용서할 것만 같은 마음으로 때때로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상처 받은 마음과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기대가 뒤섞여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나로 사는 것은 마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5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고 경단 5년의 경력으로는 하던 일을 계속하기 어려울 거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영상 틀을 구성하면서 겨우 컷편집 정도 하는 건데 영상제작을 한다고 말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하는게 마케터라고 할 수 있나, 조직을 나와서야 고인물로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재주 중에 하나가 늘었을 뿐, 집단에서 나왔을 때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무얼 좋아하지? 라는 질문보다
나는 무얼해야하지? 라는 질문으로 살아왔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먼저라 무얼 좋아하는지 자문하는 것 조차 사치가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 취득도 생각해봤습니다. 멀티가 되는 다재다능한 사회복지사라면 50대여도 괜찮지 않을까. 하하, 3월까지는 취업 활동은 어려울테고 4월에는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을 하게 되면 많은 부분이 좋아질거라 믿습니다. 물론 전 직장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가 먼저겠죠.

– ITZM

잇즘 ITZM 이즈음

안녕하세요. 잇즘입니다.

잇즘은 이즈음의 줄인 발음으로 영어로 바꾼 닉네임입니다.
저는 53년을 살면서 여러 닉네임과 별칭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과거가 묻은 아이디를 기억 속에 묻고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제2의 삶이라고 하는데 저는 매번 삶이 제2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매번 시작만 한다고 할까요.

이 곳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료가 아니라서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난 2월에 퇴사했습니다. 불안은 더 커졌고 우울감도 심했습니다. 자다 일어나 퇴사한 현실을 깨달으면 다시금 우울했습니다. 태어나 이런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어쩌면 지금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5년간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며 아이와 잘 견뎌왔고, 이혼소송도 했고, 전세도 구했습니다. 제 마음이나 감정을 돌볼 사이도 없이 달려왔어요. 이혼 후 제게 처음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집에도 오지 않는 남편에게 의존하고 세상 물정 몰라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닥친 시련은 어쩌면 필연이 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는 해야 혼자 살지? 왜 이혼한거야?

미해결된 문제는 언제고든 생의 어느 때고 앞에 놓이게 됩니다.
끝없이 회피만 해왔을까요?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잊어버려서일까요?
실직은 다른 차원의 힘겨움이었습니다.

“나의 해방일지” 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마지막 장면은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염미정의 충만한 미소였습니다. 드라마 내내 염미정의 시무룩하거나 무표정한 표정은 제 표정과 닮았습니다.

아름다운 이별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긴 시간 고민해 왔습니다. 제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끊는 방식에서 알게 된 사실들이 있었어요. 저는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거나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법을 아예 알지 못한 사람 같았어요.
오랫동안 혼자 지내서 일수도 있습니다 요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진 채 자라왔을지도 모르고요.

그동안 해왔던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표여도 53세 중년 여성을 뽑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글 하나는 쓰고 싶어서 아직은 아무도 몰라 안전한 공간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 ITZ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