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내 급여로는 생활비도 빠듯했기에 아이 학비는 연체되고 있었다. 부족한 학비는 출자금에서 차감하는 걸로 학교 측과 이야기를 하고 졸업을 시키자며 뜻을 모았다. 아이는 아빠를 만나 졸업만 시켜달라고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모두가 아이의 무사졸업을 기원하고 있었던 때였다. 아이가 그 길을 나설 때 표정은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아빠가 자신의 뜻을 들어 줄거란..

하지만 아이는 온 몸을 떨며 집으로 왔다. 아빠는 엄마가 소송 중이라서 줄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단다. 가장이 되어보며 안다며, 그럼 가장이 되어 아빠에게 연락해도 되냐 물었더니 하지 말라고 했단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아이는 큰 충격에 빠졌고 나는 전 남편에게 전화하여 무슨 일이냐며, 왜 아이를 이렇게 해서 보내냐고 물었다. 그는 매우 흥분했고 “도대체 아이한테 뭐라고 시켜서 보낸거냐” 며 화를 내었다. 나는 아이를 달랬다. 5살 꼬맹이처럼 안고 아이의 심장이 잦아들 때까지 토닥였다.
아이는 아빠와 일상을 함께 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했던 말이었다. 이 이야기는 내게도 두고두고 가슴 아픈 일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온 우주가 도와 무사히 졸업했다. 졸업식 때 옷이 없어 친구의 코트와 신발을 빌려 신고 말이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납부했던 출자금은 졸업 1년 후 각 가정으로 돌려주도록 되어 있는데 학비 미납 중이여서 출자금이 차감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학부모님들이 십시일반 아이의 학비를 보태어 출자금이 보존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는 학교 측에 청구서를 내 계좌를 써서 제출했다. 나는 현재 양육비 이행 청구 중이니 어떤 계좌로도 반환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증명을 학교 측에 보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예정보다 빨리 퇴사를 해야 했다. 다시 청구서를 작성하여 출자금 반환 요청 메일을 보냈고 얼마지 않아 입금되었다. 그리고 그는 연체된 양육비가 출자금으로 해결되었으니 법원의 출석을 기각해 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출자금을 본인이 납부하였으므로 본인이 회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깔아두고 한 태도이다. 출자금이 보존된 경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양육비보다 무서웠던 건 법원에 출석해 재산을 명시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왜 두려운거야?
교회의 한 성도님이 의외로 남자들이 아이들을 쉽게 포기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들이라도 다르지 않는 말을 듣고 가슴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났다.

작년 2월에 손목분쇄골절로 수술하며 설치했던 플레이트와 핀을 제거하는 수술이 3월 10일로 잡혔다. 채권자의 재산명시 출석과 같은 날이다.
나는 퇴사 충격으로 이미 몸과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로 혼자 해결할 수 없어 지자체의 도움과 병원 진료와 상담, 8개 종류의 약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식사는 거의 하지 못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있어 어르신들이 마신다는 “뉴케어”를 마시고 있다.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먹어보려 하지만 몇 숟깔 넘기기 힘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마음을 다치면 밥을 못먹었다. 입안은 쓰고 팔과 다리에는 점점 힘이 빠지는데 뇌는 늘 깨어 있어 불안을 해소하라고 난리인 것 같다. 진짜 이러다 미치거나 죽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공포가 밀려왔다.
그제서야 회사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이 되었다. 그렇다. 나만 몰랐던 나의 불안한 모습. 노심초사, 눈치보던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여러모로 회사는 잘 그만 두었다. 그런데 다음이 없다. 고정비(식비를 제외한)만 100만원인데 2월 급여로 3월을 산다고 해도 4월은?
2023년 이혼소송 중에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젊었고 건강했던 모양이다. 5년만에 많은 일을 겪으면서 소모되어 왔던 걸까.
나는 도움을 청하는 법을 몰랐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은 사실 자기 학대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대체 50년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하고 지내고 온 걸까.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나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을 늘 구분하지 못한다. 쓸모로움이 증명되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를 잃는다. 그래서 50대 이후의 실직은 누구에게나 매우 큰 상실이다.
-ITZ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