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폈다.

강가의 개나리

봄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계절을 핸드폰에 담는다.
아무리 잘 찍어 보려고 애를 써도 쨍한 노란 빛이 담기지 않는다.

산책하며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내면의 비판자는 끝도 없이 나를 다그치고, 작고 여린 꼬마 아가씨는 불안에 떨며 눈치만 보고 있다.
한번도 그 여린 꼬마 아가씨를 다독여준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이라도 조금씩 달래줘야겠다는 마음은 산책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면서 생겨났다.

아침에 라떼를 가지고 왔고 스레드에서 또래의 한 친구와 댓글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그 친구도 고마워했다. SNS를 하면 이렇게 잠깐 연결되는 기분은 들어도, 폰을 내려두면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계좌를 열어봤다. 귀여운 100원이 있었다. 삼성증권 모의가상계좌는 평일에 신청 가능하다고해서 더리치 앱을 깔아 해보았다. 금융상식없이 50대를 맞이해 회사가 내 미래를 책임져 줄꺼라 믿었던 걸까. 이런 생각은 30년을 한 직장을 다닌 사람도 5년을 다닌 사람도 같은 생각이다. 역시 직장은 마취제일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까지 잘 마쳤는데 다시 PC 앞에 앉으니 졸려왔다. 전정 어지럼증이 발병한 이후 생긴 증상인데 잠이 부족해 졸리는 것과는 다르다. 자리에 막상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자극 없는 상태에서는 또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어 꼬리 물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생각들은 없애버린다. 내면소통 김주환 교수님은 생각은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 생각만큼이나 요망한 것도 없다.
주로 50대에 관한 콘텐츠를 듣곤 하는데 이번 생은 확실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일어났다.
다시 PC앞에 앉아 전기세 걱정과 함께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결국 실시간으로 사용량을 체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기도 한다. 속상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이 올라올 때는 7칸 사고 기록지를 쓴다. 쓰고 나면 감정도 가라앉고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볼 수도 있다.
필사클럽은 며칠 째 정체 중이다. 독서가 가능하다는 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읽을수록 전 직장에 대한 회고가 고통스러울 땐 덮어두어야 했다.

퇴사하고 카톡은 더 조용해졌는데 퇴사 전에도 업무 카톡이 아니면 카톡이 울리지 않았다. 요즘은 필사클럽 단톡방 2개만 활발하다. 매번 메세지를 확인해도 될 만큼 양질의 메시지들이 오고 간다.
어쩌다 수신동의를 눌러 채널 추가한 광고들은 꾸준히 나의 안부를 묻는다. 차단하는 것도 일이라 올 때마다 알람을 꺼두는데 끝이 없다.
어제와 오늘은 책을 보며 회고하는게 힘들어 덮어 두었다.
며칠 째 저녁 4시부터 6시까지 극심한 우울감과 아랫배 통증이 있다. 해가 지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아졌던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회사 다닐 때도 그랬다. 해가 뉘엿 저갈 때 쓸쓸한 마음은 그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취제가 풀리자 눌러두었던 모든 감정들이 봐달라며두등실 떠다닌다.

나는 혼자 놀기 잘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영화 보러 가고, 집에서 혼자 책을 보고 카페에 혼자 있어도 지금과 같은 외로움과는 견줄 수 없다.
완전한 자유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서로 자리만 바꾸었을 뿐 달라진 건 없다.
5년 전 나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씩 내 앞에 과제처럼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