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인테리어

화이트인테리어

자다 깨어 허연 천장을 멍하게 바라본다. 몰딩이 있던 곳은 하얀 페인트 칠을 하여 벽과 비슷한 색을 내려고 노력을 터지만 선명하게 다르게 보였다. 백색과 백아이보리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종종 깨어나면 내가 왜 여기 있지? 라는 생경함을 매번 느낀다. 잠들 때에는 주변에 핸드폰, 휴대용 캠핑 조명, 맥북, 안경 2개를 꼭 옆에 둔다. 유튜브 쇼츠에서 외로운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본 것 같다.



나는 지난 30일 치핵수술 이후 배변장애와 엄청난 통증에 사로잡혀 잠들 때마다 자기 전의 외로움 따위는 사라졌다. 어떻게든 옆으로 누워야 했고, 잠을 많이 자도 쉬어도 다른 감정을 느낄 사이가 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몸이 편하면 생각도 많아지는 법.


치핵수술이 처음은 아니다. 아이를 낳을 때 치핵 때문에 고생해서 조리원 동기와 서로 번갈아 가면 아이를 봐주며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그리고 광명을 찾았는데 딱 10년만에 재발했다. 배변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한다는 사실을 관과했다. 막상 수술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깊고 사방을 도려냈다고 했다. 그러니 통증이 첫 수술 때와 비교도 안될만큼 고통스러웠다. 케어해줄 병원을 찾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결국 그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지혈주사도 맞았다.
4일이 지났다. 모든 것이 뒷전이 될만큼 아파왔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졌다. 원장선생님이 왜 다른 병원 굳이 가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진다고 느꼈다. 나는 죽에서 일반식으로 넘어갔고 밥 맛이 없어도 억지로 먹었다.

한 낮의 거실

낮 시간에 집에 있었던 과거의 나를 본다. 그땐 이혼 전이었는데도 혼자였지만 별스럽지도 않았다.
아는 동생이 “언니, 그게 별거예요.” 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
집은 말끔하게 정돈하고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며 부엌에서 부지런을 떨었다. 그래서 낮의 밝은 집과 한적함은 그다지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정리한 결혼생활을 다시 소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외로웠어도 큰 걱정이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무슨 힘으로 이혼을 했던걸까. 지금 생각해도 다 꿈같이 느껴진다.

어떻게 저 길을 지나왔지?

선명해질거라 믿고 걸어온 길 앞은 다시 화이트아웃이다. 과거에 머문 시선은 과거를 더 선명하게 또는 더 그립게 만들었다. 지금이 고통스러울수록 미화된 과거 속으로 자신을 끌고 갈테니까.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얼마 안되어 그가 내게 토할 것 같다는 그 심정을 이제서야 알겠다.

개나리가 폈다.

강가의 개나리

봄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계절을 핸드폰에 담는다.
아무리 잘 찍어 보려고 애를 써도 쨍한 노란 빛이 담기지 않는다.

산책하며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내면의 비판자는 끝도 없이 나를 다그치고, 작고 여린 꼬마 아가씨는 불안에 떨며 눈치만 보고 있다.
한번도 그 여린 꼬마 아가씨를 다독여준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이라도 조금씩 달래줘야겠다는 마음은 산책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면서 생겨났다.

아침에 라떼를 가지고 왔고 스레드에서 또래의 한 친구와 댓글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그 친구도 고마워했다. SNS를 하면 이렇게 잠깐 연결되는 기분은 들어도, 폰을 내려두면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계좌를 열어봤다. 귀여운 100원이 있었다. 삼성증권 모의가상계좌는 평일에 신청 가능하다고해서 더리치 앱을 깔아 해보았다. 금융상식없이 50대를 맞이해 회사가 내 미래를 책임져 줄꺼라 믿었던 걸까. 이런 생각은 30년을 한 직장을 다닌 사람도 5년을 다닌 사람도 같은 생각이다. 역시 직장은 마취제일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까지 잘 마쳤는데 다시 PC 앞에 앉으니 졸려왔다. 전정 어지럼증이 발병한 이후 생긴 증상인데 잠이 부족해 졸리는 것과는 다르다. 자리에 막상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자극 없는 상태에서는 또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어 꼬리 물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생각들은 없애버린다. 내면소통 김주환 교수님은 생각은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 생각만큼이나 요망한 것도 없다.
주로 50대에 관한 콘텐츠를 듣곤 하는데 이번 생은 확실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일어났다.
다시 PC앞에 앉아 전기세 걱정과 함께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결국 실시간으로 사용량을 체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기도 한다. 속상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이 올라올 때는 7칸 사고 기록지를 쓴다. 쓰고 나면 감정도 가라앉고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볼 수도 있다.
필사클럽은 며칠 째 정체 중이다. 독서가 가능하다는 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읽을수록 전 직장에 대한 회고가 고통스러울 땐 덮어두어야 했다.

퇴사하고 카톡은 더 조용해졌는데 퇴사 전에도 업무 카톡이 아니면 카톡이 울리지 않았다. 요즘은 필사클럽 단톡방 2개만 활발하다. 매번 메세지를 확인해도 될 만큼 양질의 메시지들이 오고 간다.
어쩌다 수신동의를 눌러 채널 추가한 광고들은 꾸준히 나의 안부를 묻는다. 차단하는 것도 일이라 올 때마다 알람을 꺼두는데 끝이 없다.
어제와 오늘은 책을 보며 회고하는게 힘들어 덮어 두었다.
며칠 째 저녁 4시부터 6시까지 극심한 우울감과 아랫배 통증이 있다. 해가 지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아졌던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회사 다닐 때도 그랬다. 해가 뉘엿 저갈 때 쓸쓸한 마음은 그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취제가 풀리자 눌러두었던 모든 감정들이 봐달라며두등실 떠다닌다.

나는 혼자 놀기 잘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영화 보러 가고, 집에서 혼자 책을 보고 카페에 혼자 있어도 지금과 같은 외로움과는 견줄 수 없다.
완전한 자유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서로 자리만 바꾸었을 뿐 달라진 건 없다.
5년 전 나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씩 내 앞에 과제처럼 놓였다.

6시 알람은 울리지 않는다.

6시 알람을 꺼두었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던 부지런한 손놀림도 멈췄다. 새벽에 깨어나도 다시 잠들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회사 단톡방을 나왔다. 업무 카톡 외에는 조용했던 카톡이 주말처럼 내내 조용해졌다.
한 분 한 분 인사 드렸으니 되었다. 산책을 나가다 이제는 출근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려왔다.

회사에서의 낮시간이 벌써 그립다. 아침 인사하는 동료들, 내 이름을 부르며 업무를 요청하는 동료들, 아침마다 가지고 왔던 카페라떼가 놓여진 책상, 문 열어달라 외치던 고양이….

내게는 울타리였던 회사였다.

끼여들기 작정한 차와 접촉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기세가 약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듯 더는 욕심 내어서는 안되었던 걸까. 그런데 나는 브레이크를 제때 잘 밟은걸까?
밥을 먹으러 가는 사거리에서 “엄마”하며 내 눈과 시선을 마주치려는 두 눈동자가 흔들리는 나를 애써 세운다.

주말마다 했던 가사도우미 알바를 할까. 다시 이력서를 넣어볼까 했는데 갑자기 손목 핀 제거 수술 일정이 떠올랐다.
2월에 수술을 하고 3월에는 아이의 입학과 한부모 가족을 재신청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심리치료가 우선이다. 설 연휴 이후로 일정이 잡혔는데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그때 내가 이렇게 대응했더라면 달라졌을까라는 반추는 자책으로 이어졌고 요즘 흔한 말로 편도체가 과도하게 켜져 위험하지 않아도 위험하다고 느껴 비상사태가 된다. 이렇게 반추와 편도체의 하이체킹은 뇌 속에서 무한루프를 돈다.

퇴사하기 전 날,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회사 짐들을 함께 날랐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조잘거렸다. 기운을 주려는 의도와 다르게 엄마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따듯한 온기다. 그걸로 되었다.


– ITZM

2026-02-13 에 최초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