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있을 때 걷고 싶어 서둘러 긴 모직코트에 얇은 목도리까지 두르고 산책길을 나섰다. 오랫동안 집안에서만 지내는 은둔형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른다더니 딱 그 꼴이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소리를 내며 불편한 걸음을 하는 장애인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 보호자로 보이는 분은 그와는 조금 떨어져 앞서 걷고 있었다. 어쩌다 그와 걸음 속도가 비슷해져 꽤나 긴 코스를 내내 같이 걷게 되었는데 그가 내는 소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움찔했다가 있지도 않은 에어팟을 호주머니에서 뒤적거렸다. 어지러움 때문에 요즘은 에어팟도 잘 안끼니까 가지고 오지도 않았던 것. 그래도 조금 더 걷다보니 그 소리도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 목도리는 풀고 손으로 들고 다녔다. 외투를 벗어도 좋을 만큼 날은 관대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벼운 외투를 입고 있고 겉옷을 벗어 허리춤에 동여매고 뛰는 사람들도 보였다.
똥강엔 녹조도 심하고 물도 더러운데 불법 낚시꾼들은 평일보다 많았다. 낚시금지가 여기 저기 꽂혀 있었지만, 진짜 물고기가 잡히는지 의문이라 가까이 다가가 생선(!)이 정말 잡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다른 산책로를 걷고 싶어서 검색했는데 돌아가기엔 너무 멀어 포기하고 마저 걸었다.
이 곳이 낯설어서 싫은 건지, 낙후된 풍경들이 싫은 건지, 어쩌다 인천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선택했지만, 내가 선택한 것 같지 않은 느낌,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싶은 순간들, 모든게 꿈 같아, 부대껴도 이제야 나 답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실직하고 나니 모든 게 바사삭 부서졌다.
중장년 취업 솔루션이나 후기들을 보면 더 답이 없어 보이더라고. 나만 가진 고민도 아니고 누구나 이 나이의 실직은 좌절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쓸모를 증명하려 애를 쓸수록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증명하지 않고도 살 수 없을까. 최소한 나 스스로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사랑스러울 순 없는 것일까.
내 나이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도 생각해봤는데 그 공부도 2년은 걸리겠고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이어가지 싶었다. 구인공고를 볼 때마다 내가 가려고 하는 회사의 지원자는 대부분 20-30대고 나는 시니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장년 치곤 PC와 AI툴을 잘 다루는 사람이고, 어쩜 이렇게 애매할 수 있나 싶더라고.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아니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제 하다하다 산책길가의 바윗돌마저도 슬퍼 보였다. 지독한 우울증은 몸을 움직이라 말하는데 전정발작(어지럼증)은 무조건 쉬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햇살 아래서 걷겠다고 한 나 자신은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