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호자가 없습니다

오늘이 공휴일이 아니라면 한창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일과의 시작은 건강한 긴장이었다. 일에 대한 기대와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할 수 있는 출근길은 감사한 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라떼를 잊지 않고 라떼를 사 들고 가던 나의 모습이 그립다.

2021년 2월 입사

2022년 11월 변호사 선임

2023년 2월 원룸으로 이사
2023년 2월 쿠키양 무지개 다리 건넘
2023년 7월 13평 아파트로 이사
2023년 11월 조정이혼으로 18년 결혼생활 완료

2024년 5월 한부모, 주거급여 대상자로 선정

2025년 2월 아이 발도르프학교 졸업
2025년 2월 손목분쇄골절로 수술과 입원
2025년 8월 인천으로 이사
2025년 11월 어지럼증 시작

2026년 2월 퇴사
2026년 3월 손목플레이트제거 수술예정

지난 5년간(2021~2026)의 기록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5년은 거대한 파도를 쉴 새없이 넘는 시간이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 싶을 때도 있다. 이상한 결혼생활을 지속해도 되지 않을까는 하는 생각은 지금의 고단함이 밀려와서 드는 생각일 것이다.

지금 먹고 있는 약들은 조절이 필요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감정은 느껴야지. 화도, 기쁨도, 의욕도 없다. 브레인 포그 현상까지 겹치니 답답하다.
설령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해도 운동할 기운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작년 이맘때 손목골절로 병원에 21일간 병실에 누워만 있을 당시, 근육이 쉽게 빠져나가는 걸 체감할 정도였다. 인지 기능도 떨어져 업무 수행에 차질이 생겼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소외감은 더해져 회복은 더욱 더뎠다.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최근 무기력증이 심해져 제미나이를 통해 약물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현재의 증상이 과도하게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약물들로 구성되어 있고 상호작용의 여부도 확인해 봐야겠다.
항우울제는 별로 듣지 않는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져 있다. 그래도 아이와 밥 먹는 건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런 감정도 의욕도 못느끼는 상태가 되는거지? 짜증스러운 상황에서도 귀찮은 상황에서도 무덤덤해지는게 너무 싫었다.

아이는 교회를 가서 집은 더 없이 고요했다. 집안일을 주섬주섬거리다 갑자기 소리 내어 울었다.

자기연민일까.

나는 항상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지려는 태도가 자책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그럼 선택의 결과가 잘못되어 생긴 문제에 힘들어할 자격조차 없는 것인가?
지역 상담사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든 상태인지 물었다. “아이가 없다면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내민 종이에는 6점 척도의 평가지에서 나는 5번 또는 6번을 선택했다. 그렇게 정신건강 바우처에 선정되었다.

오전 6:29
어제 보다 기분은 나아졌다. 그 동력으로 기록을 하고 있다.
아이는 운동을 나갔다. 아이가 운동 가느라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멈춰 있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와 유착될까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아이 없이는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 상태는 지독한 모순이다.
아이가 잘 독립하길 바란다. 나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잦아들면 좋겠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연습이 필요하기에, 곧 있을 수술도 혼자 가기로 마음 먹었다.
“보호자는요?”
“전 보호자가 없습니다.“

-IZUM

일을 안하면 어때요?

시간에 매이지 않아 한적한 병원 나들이, 무직자 답게 여유로웠다. 전정발작약이 듣지 않는

것인지 전정발작이 아닐수도 있는 것인지 약이 소용없는 날이 이틀째 지속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생계보다 자기효능감이나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어서 일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다. 그게 왜요? 내가 무엇이 되어야만 사랑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학교 다닐 때에는 공부를 잘해야 인정 받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녀야지만 사람 노릇

한다고 했다. 때가 되면 결혼해야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나는 그런 조건이 붙었다.

70년대생이라면 그런 주변 분위기에 압도 당하며 지내왔을 가능성이 크다.당연히 엄마에

게 인정 받으려면 그 나이에 맞는 나이 값을 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철이 없다 라는

소리를 듣고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앞가름을 못해서 인지 철이 없다라는 말은

간간히 들어왔던 것 같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인정 받으면서 집에만 오면 작아졌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이 편했을리 없다. 가족이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

는 걸 스스로도 납득했기 때문에 불편함도 감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나

의 도피성 결혼의 결과가 오늘의 나일까?


8회기 심리상담치료에서 전직장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꼬맬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끝도 없는 반추로 에너지를 다 쓰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만한 상태”는 8회로는 어림도 없어보였다.


심리치료의 궁극적인 목적도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시네요.” 라며 동의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좋은 엄마도, 열심히 하는 직원도 아닌 내가 나로 살아도 안전한 일상이다.

까치발을 들고 선반 위에 올려진 물건을 꺼낼 수 없는 마음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내내, 회사를 다니는 내내…

그러나 나는 이제 보호자 없이도 수술할 수 있으며 병원에 있는 동안 누군가 방문해주길 바

라는 마음도 갖지 않아도 되었다.

손목골절 당시에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했고 정리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회사까지 그만 두게 되었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끊어져 지독한 고립을 맞이했다.


괜찮아?



누군가와 닿는다해도 갈증은 해소될리 없었다. 느슨한 인간관계를 또 찾으면 될텐데 지금은 그럴 에너지가 없다.

어제 오늘 이제껏과는 다른 어지러움이 시작되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괜찮지 않은 감각,

봄동을 다듬고 양념고기를 구우며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전정발작약 때문에 멍한

것일까. 그런데도 어지럼이 계속 되는건 왜인지 모르겠다. 재빨리 예약을 잡았다.

이젠 연차 눈치 안보고 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예약할 수 있다.


목사님으로부터 운전을 배우고 있는 아이는 2시간 거리의 교회를 다니고 있다.

아이의 진득한 고집스러움이 때로는 안타깝고 그게 또 우리 아이지 싶었다.

아이가 언제 오는지 카톡으로 물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1층 공동현관문 유리에 비친 모습을 본다. 처진 눈커플, 선명해지고 있는 마리오네트 라인, 작디 작은 몸, 그리고 기쁨 하나 없는 무표정한 얼굴.

그럼에도 이런 나를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평가하지 않고 쓸모없어도 괜찮은 사람이 가능한가? 머리로는 알겠지만, 도무지 안될 것만 같아

“일을 안하면 어때요? 꼭 일을 해야 해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이다. 도대체 일을 안하고 어떻게 생계를 이어 가는 거지?


-ITZ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