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이 내게 가하는 가장 큰 복수

변호사에게 먼저 연락이 온 건 처음이었다. 대부분 행정적인 말투고 빨리 해치우려는 목소리도 멀치감치 들린다. 혹 무선 전화기라서 그런가요? 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 못했어요. 네네~ 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변호사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공감도 잘하는 편이어서 의아했다.

감치를 원하냐는 했다. (내가 그걸 원할리 없다.) 아이의 권리니까 어른인 내가 나서는 것 뿐이라고 했다. 사실 이 말을 하면서 스스로가 역겹기도 했다. 마지막 양육비이기도 하고 양육자가 실직자에 요양 중이며 아이도 희귀질환을 앓고 있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기 어렵다고도 전했다.

‘그가 힘든 상황인 것 같다. 올 초에 일정 금액을 보낸 걸 보면.. ‘ 라고 말했다. ‘돈이 있으면 보낼 사람이긴 하다.’ 라고도 덧붙혔다. 변호사는 아이가 법적 성인이 되면 아무리 연체가 되었다 하더라도 미성년의 양육비에 비해 판사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양육비이행관리원 담당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었다. 변호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했고 며칠 뒤 사건이 접수되었다는 안내장을 받았다.

변호사는 아빠가 아이를 만나지 않고 연락도 끊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멍든 명치를 무직한 돌이 얹어진 기분이다. 본인이 사십대가 되어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혔다. 아들에겐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아니다.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필요하다. 거대한 산과 같은 절대적 백그라운드.

아이는 많은 부분이 전 남편을 닮았다. 특히 검소하고 물질에 욕심 내지 않는 것도 닮았다. 아이와 나는 이젠 아무렇지 않게 그의 이야기하곤 한다.

아이는 엄마를 선택함으로써 아빠를 잃었고 그것은 전 남편이 내게 가하는 가장 큰 복수이기도 했다.

양육비는 별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할 것이다. 언제나 결과는 내 몫이 아니다. 그러니 안타까워 말라.

잇즘

내가 참일까?

하루 종일 참고서면을 작성했다. 증거를 하나라도 더 찾아내겠다는 집요함으로 꼬박 6시간을 PC 앞에 붙어 있었다. 증거서류를 차곡차곡 쌓고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했던 재산명시 리스트를 넘기던 순간, 어제까지만 해도 읽어내지 못했던 그의 궁핍한 처지가, 모든 조사가 끝난 마지막 장에서야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한 푼도 주지 않으려는 매정한 사람이라 낙인을 찍었는데, 이제 와 이 무슨 갑작스러운 해석인가.
맨 처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봤던 그의 재산명시에서 유독 시선이 머물렀던 건, 보험 수익자가 아이가 아닌 여동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신감에 눈이 멀어 정작 숫자들이 말하는 그의 상황을 보지 못했다.

2025년, 양육비가 연체되고 있었지만 독촉하지 않았다. 양육비에 매달려 살면 삶이 너무 피폐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파헤친 자료 끝에 마주한 진실은 처참했다. 사촌에게 30만 원, 50만 원씩 빌려 연명해온 내역들. 이제는 생활비 부담도 없고 양육비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 이혼 후 오히려 살만할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꾸준히 돈을 빌린 정황은 사정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마음이 약해져 이행청구도 취하하고 출자금 일부도 돌려줄까 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다. 그는 웬만하면 양육비를 보내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를 그토록 나쁜 사람으로만 몰아세웠을까.

이혼 전, 그가 조금씩 돈을 빌려 생활비를 가져다주던 때가 생각나 다시 눈물이 터졌다. 그는 사업 실패를 만회하려 매번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일을 핑계로 집을 비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지냈던 18년, 우리는 끝내 이혼하고야 말았는데 퇴사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이혼을 후회하는 마음은 당장 몰려오는 연민에 비할 바 아니었다.

왜 계속 울고 있는가. 베란다에서도, 책상 앞에서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회한, 후회, 연민, 자책…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이상했던 결혼생활 18년과 전 직장에서의 5년, 지난 23년을 내 것이라 꽉 쥐고 있다 펼쳐보니 텅 빈 손이다.

저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는 할 게 없다며 불 꺼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ITZM –

동물 다섯 마리 사진 찍기 미션

아이는 ○○까지 등하교를 하고 있다. 근 2시간 거리지만 인천에 이사 와서도 시흥에 있는 교회를 기꺼이 다니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년을 넘게 똑같은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엄마, 산책길에서 동물 사진 다섯마리 찍어 보내~”

매사 긴장해야 했던 사회생활이 끝나고 나니 승모근 통증이 절로 사라졌는데 대신 그 자리에는 우울과 불안이 자리했다. 잠을 잘 못 잤는지 허리가 아파 걷기 싫기도 했다. 영하의 날씨도 아닌데 롱패딩 차림이었다. 제법 바람이 불어 나쁘지 않은 옷차림이었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은 예전보다 짧아지고 얇아졌다.

아이가 낸 숙제를 하기 위해 강가로 바짝 붙어 걷고 있는데 이른 아침이라 동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 했지만 멀리 비둘기 한 마리를 찍었을 뿐이었다. 혹시 사람을 동물이라고 우겨볼까 잠깐 생각이 스쳤지만, 도촬은 옳지 않다. 되돌아오는 길에 마른 나뭇가지의 노란 새(꾀꼬리로 추정)를 보았다. 아, 너무 예뻤는데 역시 틈을 주지 않는다. 귀여운 참새들 무리도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날아가 버린다. 참새 사진은 숨은그림찾기 수준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하루 30분 엑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엑셀을 전혀 못하는 건 아닌데 함수나 단축키, 많은 데이터를 원하는대로 추출하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 시작했다. 메모까지 해가며 30분 한다던 공부가 2시간이 넘어갔다.
단종앓이 때문만은 아니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상념이 죄책감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나는 인생을 통틀어 아버지 돌아가실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
“이거 해서 뭐해? 네가 어디에 취직할 줄 알고? ” 라는 사고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감정은 몸을 움직여야 해결된다고 내면소통의 저자 김주환 교수가 말했다. 그래서 오후 산책을 또 나갔다. 가을 날씨처럼 청명하고 맑았으니까 충분했다. 그늘지지 않은 곳으로 걸었다. 평소보다 더 멀리 걷다보니 ○○동 성당이 나왔다. 한참 시선을 두고 있다 발걸음을 돌렸다.
군데군데 봄 기운이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푸릇하게 새싹이 돋기도 하고 그 사이 드문드문 쑥도 보인다.

강가의 왜가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왜가리를 만났다. 강가에서 곧은 자세로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가까이 있어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조그마한 새들과 달리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물에서 나와 조심조심 수풀 위를 걸어 다닌다. 늘 물에 잠겨있던 왜가리의 발이 닭발처럼 생겼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왜가리의 가늘고 긴 까만 깃털이 바람에 나부끼지 않았다면 “화면정지 아님” 자막이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아이가 곧 하교할 시간이다. 4개의 동물 사진을 보냈다. 오늘 간식은 삶은 계란이다.

– 왜 5개의 동물사진이야?
– 5개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

– ITZ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