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발도르프학교의 졸업 논문으로 ‘청소년기의 수면 건강’을 선택했다. 언제부턴가 잠이 너무 많아져서 수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 무렵 아이 뿐만 아니라 잠을 이기지 못한 친구들도 몇 있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수면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은 덕에 카페인 중독자인 엄마에게 잔소리도 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학교 선생님께서 병원을 알아봐 주셨고 아이와 수차례 병원을 다녀오시기도 했다.
수면다원검사와 다중수면잠복기 검사를 통해 자신이 기면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기면증 외에도 수면 무호흡증도 동반하고 있어서 양압기 처방도 내려졌다.
상급(중3~고3) 학생기록부에 의하면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던 기면증 증상이었다.
누군가는 게으르게 보거나 또는 무기력한 아이로 보기도 했다.

수면다원검사를 하던 날, 아이와 둘이 강남으로 향했던 전철 안에서 혼자 감당해야 할 일들이 하나 둘 떠올라 매우 참담했다. 두려운 마음에 힘을 얻고자 아이의 손을 잡았다. 굳은 살 하나 없이 보송한 손을 잡고 작은 어깨에 기대어 마음 놓고 자는 숨소리를 들었다. 강남까지는 꽤 먼 거리, 자다 깨어 풀린 눈으로 엄마 얼굴을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아이는 잘 정돈된 수면검사실에서 난생 처음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적당한 조도에서 수면에 좋다는 비싼 침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낯선 곳에 아이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거웠다. 언제 지상에 도착할까 싶을만큼 긴 에스칼레이터를 목이 꺽이도록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쿠키양도 아이도 없는 컴컴한 집을 떠올렸다.
이젠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는 두려움일까, 그런데 언제는 혼자 감당하지 않았던가?
아이를 두고 온 마음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홀로 두어본 적이 없었구나.

출산 직후 푹 꺼진 배가죽을 쓰다듬으며 다시 임신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일었던 때처럼
7겹의 절개를 하고 또 7겹을 꼬맸을 뱃가죽을 움켜잡고 한 발 한 발 아이가 있는 곳으로 필사적으로 움직였을 때처럼.
저 멀리 빨가난 얼굴에 보조개가 패인 뺨을 유리창에 바짝 얼굴을 갖다대고 바라보았을 때처럼.
*
기면증 진단을 받고 2년이 지났다. 엄마 혼자 난리였지 아이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내가 따로 챙길 것도 없이 스스로 약도 챙겨먹고 9시면 잠을 자러 갔다.
공군을 지원하고 싶던 아이는 기면증으로 현역과 사회복무요원사이를 오가다 대구에서 확정 진단을 받았다.
9시면 닫히는 아이 방문, 양압기의 일정한 숨소리, 더 이상 학교에서 걸려오지 않는 전화, 알람 없이 일어나 식탁에 앉아있는 아이의 얼굴. 한때는 무기력이라 오해받던 잠이, 이제는 그저 잠일 뿐이라는 사실이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 ITZM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인 것이냐고,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 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다가오는 말들」 은유,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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