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마다 방문하는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백발의 선생님은 은행 계좌에서 비정상적인 거래내역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으시더니
“범죄자네요? 이혼하시길 잘했습니다.”
나는 왜 스스로에게 이 말을 건내지 못했을까.
이혼하길 잘했다니, 이혼은 결혼생활의 실패이며 사회적 정상범주에 벗어나 무리에 속할 수 없다는 소외감은 자격지심과 다를 바 없는데도 의외로 잘했다, 축하한다 말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난생 처음 전세대출을 받아 작은 아파트로 이사갈 때 공인중개사가 그랬고, 친구들은 이혼 축하 파티를 해주기도 했다.
그는 내가 처음 내원했을 때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건낸 첫 질문이
“그래서, ##씨는 ##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였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부단히 홀로 긴 시간동안 서 있어야 했다.
‘원하는 삶이라니요. 그런 건 애초에 없지 않나요. 선생님?’
이혼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숨막힌다. 아이와도 만나지 않는 전남편이 양육비로 나와 묶여 있다 생각하니 괜히 이혼했다 싶을 때도 있다. 달라진게 없다. 왜 이혼을 한거지? 무슨 이혼 후의 삶을 기대한 것도 아닌데.
주방 씽크대 서랍장에 어울리지 않게 보관되어 있는 명품 반지갑은 서랍을 열 때마다 발견된다. 버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속도 없고 눈치도 없다. 하지만 지갑을 버리면 양육비를 받지 못할 것 같아 두고 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더 불쌍하지 않겠어요?”
이혼이 잘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인데 거꾸로 했다.
지금이라도 전남편이 자신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오지랖인가?
아버지 노릇은 포기하신듯 하니, 오지랖은 아니다.
전남편의 사무소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2023년에 양육비 받으려면 협조하라던 카톡 내용이 무색했다. 결혼생활 내내 내 명의로 받았던 수수료 및 급여 등의 지급명세서가 있는데도 사무소 측 답변은 공식적인 답이라기보다 전남편의 말을 Ctrl+V 한 모양새다.

“A하고는 사무실하고 아무 관련이 없고 10원 하나 줄 것도 없으니 두사람 일은 두사람이 알아서 했으면 좋겠네요.”
대표라면 “A는 이제 여기서 근무하지 않는다. ” 말이 더 설득력 있지 않나.
자기 생각도 스스로 못쓰는 사람들이 자기 살겠다고 저렇게들 열심히다.
코묻은 돈 그렇게 하시다 큰일납니다.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는거지.
절차는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도 단전에서 올라오는 분노가 턱을 어퍼컷 하고 찍고 만다.
-ITZ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