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와 한부모

“6개월 지났으니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부터 하시죠.”
변호사의 말투에서 지역색이 느껴졌다. 나는 채무불이행까지만 알아들었다. 이행청구, 재산명시, 끝도 없는 싸움인가 했다. 그런데 이게 싸움 축에나 들어가는 일인가? 재산조회해도 나오지 않을거란 걸 알고 있다. 아마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도 유지될 포지션이었다. 채무불이행자명부에 등재된다고 전남편에게 무슨 불이익이 갈까?
마이너스 통장 쓰고 있었고, 자기 앞으로 재산도 없고, 법인에 숨어 있고, 감치도 무의미하다.

공단의 사무원은 동사무소라는 단어를 썼다. 마침 공단 근처에 행정복지센터가 있었고 나는 동사무소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의 초본을 발급 받아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양육비가 들어오든 말든 이젠 상관없다고 느낄만큼 무감해졌다.

전자소송포털에서 변호사가 작성한 이행명령조서를 읽어봤다. 분할 납부하라는 문장에서 그의 유연함이 보였다.
전남편이 정말 몰랐다면, 그만큼 양육비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미련하게 그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붙잡아 의무를 지게 하려는 노고를 그만두기로 했다. 아이도 원하지 않는데 무슨 짓인가 싶었다.
오만이다. 내가 노력하면 될꺼라는 오만.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데, 아이를 위한답시고 어쩌면 자신의 욕망으로 매달려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양육비에 대해서는 무뎌졌어도 “우리 가족한테” 라는 말을 들으면 매번 긁히곤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가장 가혹한 벌을 내리고, 그걸 보고 있는 애미까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이에게 마음이 없으니, (중략) 정리 잘하고..” 라는 문자를 보니 미련스러웠던 마음은 한번의 손짓으로 말끔히 치워졌다.
얼마냐며 거들먹거리는 그에게 금액 대신 사건번호를 알려주었다. 손하나 까딱 안하려는 그를 조금 더 귀찮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정확한 금액은 몰랐다. 사건번호는 정말 친절한 답이었다.

몇 년 전 한부모를 신청할 때 중위소득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멋모르고 신청했던 주거급여까지 승인되면서 내가 진짜 가난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았더랬다. 한부모가족 신청서를 작성하는 손은 떨렸고 얼굴은 빨개졌고 생각은 두서가 없었다. 마치 반성문을 쓰러 교무실에 온 고딩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동안에 내가 누려왔던 것들이 내 것이 아닌 것을 알았고, 아이에게도 지금의 상태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늙었다.

– ITZM

담쟁이덩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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