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을 깨우는 건 쿠키였다. 발 밑에서나 허벅지와 사타구니 사이에 옴폭 들어가 또아리를 틀고자다 당당히 가슴 팍을 당당히 밟고 입주변을 정성껏 핥았다.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도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몸뚱아리는 같은 건물에 있는 컴포즈 카페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말을 건내어 보는 사람이 카페 주인이다.

한 때 좋은 엄마가 되어보겠다고 입에 달고 있던 인스턴트 커피를 끊기도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카페인 중독자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카페라떼를 고수하며 가만히 앉아 쉴 수 있는 라떼를 마시는 여유는 부지런한 일상 뒤에 오는 보상으로 여겼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 힘을 내어보자는 격려이기도 했다.

독립 준비를 하며 오피스텔을 계약하고 집으로 돌아와 근처에 컴포트 카페가 있는지부터 검색했다. 카페라떼를 마시고 출근하던 루틴에서라도 안정을 찾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던 쿠키는 이사 다음날 새벽, 품에 안긴 채 마지막 숨을 내뱉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 작은 몸이 불구덩이에서 생명체가 아닌 물체로 되어 화구에서 나왔다. 자그만 쿠키의 머리뼈가 보였다. 곱게 빻아 작은 항아리 속에 담겼다.
작은 항아리 속에 담긴 쿠키를 창가에 두고 축축한 혀 대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에 억소리를 눌러가며 현관문을 나섰다. 길 건너 컴포즈 카페는 불이 꺼져 있다. 낯선 거리, 낯선 정류장, 낯선 노선을 지나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와도 몽롱한 기운은 마치 뇌 속에서 부유하는 먼지처럼 하염없이 떠다닐 뿐이었다.
회사에는 각종 커피가 다 있지만, 카페라떼만 없다. 회사 근처에 컴포즈 카페는 버스정류장으로 3코스 정도 거리만큼이나 떨어져 있어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길을 나섰고 조금 더 걷기로 하고 카페라떼를 마셨다. 전남편은 서류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소송 취하를 빌미로 생활비부터 끊었다.
하루 2,700원도 허락치 않는 삶보다 여전히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수치심으로 타올랐다.

카페라떼를 포기하지 않고 도보 출퇴근을 선택했다. 벚꽃이 만발하던 거리에서 벚꽃이 흩날리던 거리로, 틈만 나면 피워 내던 씀바귀를 카메라로 은은하게 담으며 다녔다. 그 길에서 원두 굽는 냄새로 알게 된 휘게랩이라는 카페는 직접 로스팅하고 있었다. 매일 참새 방앗간처럼 그 곳을 들려 카페라떼를 손에 들고 출근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카페인으로 끌어올릴 체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도 크고 작은 실수가 연발되고 방금 들은 말도 잊어 버리고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리기 일수였다. 간절히 쓰고 싶었던 글은 한 줄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오후 4시만 되면 바닥나는 체력에 6시까지 버티는데도 벅찼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 노동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자다가 수시로 깨는 건 리듬이 되었고 오십대로 진입한 나의 몸은 더 이상의 수면부족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약 지어 먹으라 보내주신 친정엄마의 돈을 생활비로 쓰려던 마음을 손에 쥐고 한의원을 찾았다. 수면부족, 극심한 스트레스, 집중력, 기억력 모두 바닥, 70대 할머니 보다 못한 맥. 한의사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었다며 우선 커피를 줄여 보는게 좋겠다고 했다.
일반적이지 않았던 전남편은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비양육자의 양육비 미지급 80%라는 통계에 합류함으로써 다수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2년 뒤 회사 근처로 이사가겠다던 꿈을 품으며 깨알같이 모아두었던 적금 하나를 또 깨며 빈곤해진 통장잔고를 채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몰려왔다. 이사 계획은 어긋났고 아이의 병원비가 지출되었지만, 나의 안부를 묻는 이에게 카페라떼가 너무 맛있어서 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 초록한 빛깔들을 눈부시게 바라본 시간들을 바라본다. “청둥오리가 날 수 있었던 거냐, 저 불뚝한 배로 날 수 있다니 놀랍다.” 말을 뱉어놓고 ‘그럼, 나도 날 수 있지 않을까’
커피가 얼마나 남았는지 1회용 종이컵을 흔들며 무게를 가늠하고 뚜껑을 열고 마지막 한방울까지 입 안으로 털어 넣는다. 제자에게 커피 쿠폰을 쏘는 선생님이 있고 아들 뻘 되는 2001년생 직장동료가 쏘는 카페라떼가 있고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여진 카페라떼도 있다. 모두 나에겐 희다. 무언가에 쫓겨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사한 마음은 카페인처럼 나를 흔들어 깨웠고 은은하게 퍼져가는 감각은 후로도 시시때때로 조용히 머물렀다 사라지곤 했다
최초작성 2024. 5. 26. 11:08